美 “먼저 해야 이익” 압박하는데 ··· 관세 골든타임 대응 묘수는
對美 투자 늘어날수록 한국 수출도 증가 … 韓·美 협상의 키는 AI·조선·에너지
도널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관세협상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5개 우방국을 대상으로 ‘우선 협상(top targets)’을 추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韓·美 간 관세 협상이 급물살을 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트럼프 美 행정부는 한국 등을 겨냥해 “가장 먼저 협상에 나서는 사람이 최고의 합의(first mover advantage)를 한다”고 밝혔다. 스콧 베선트 美 재무장관은 4월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TV 인터뷰에서 일본, 한국, 베트남과의 협상을 언급하며 “이 협상들은 매우 빠르게 진행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우리는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을 비롯해 관계부처 수장들의 미국 방문 일정이 연쇄적으로 잡혀 있어 관세와 방위비 분담금 등 안보 문제까지 연계하는 통상·안보 패키지딜이 성사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크지만, 일각에서는 반도체 관세가 추가로 부과될 수 있는 등 불확실성이 있는데다 조기대선까지 리더십 공백이 불가피한 만큼 성급한 협상은 오히려 발등을 찍을 수 있다고 지적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공세 속에서 한국이 기회를 얻을 수 있는 돌파구는 무엇일까? 트럼프 행정부가 자국의 제조업을 재건하고 무역수지 적자를 줄이겠다는 취지로 고율의 관세 정책을 펼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對美 투자를 늘릴수록 한국의 수출도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산업연구원은 4월 11일 이 같은 내용의 ‘한국 대미 수출의 구조적 분석’ 보고서를 발표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무역수지를 수치로만 해석한 것으로 미국에 공장을 지으라고 하고 중국과의 무역 갈등을 조성할수록 한국의 對美 무역흑자는 필연적이다”라고 밝혔다.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이 對중국 무역제재를 본격화한 2015년경부터 주요 중국産 중간재 수요가 한국으로 이전되며 미국의 한국産 수입 의존도는 큰 폭으로 증가했다. 트럼프 1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강화, 바이든 행정부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 등 투자 유인 정책에 따라 한국 기업의 미국 현지 진출은 활발히 이뤄졌다. 미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은 생산에 필요한 중간재 및 자본재를 상당 부분 한국에서 조달하고 있어 결국 미국 내 투자는 한국의 수출을 직접적으로 늘리는 요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産 중간재와 자본재에 대한 미국의 의존도가 상승하고, 현지 매입 비중이 증가하는 추세는 양국 산업 간 연계가 심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산업연구원의 박성근 연구위원은 “한국産 중간재와 자본재는 미국 제조업 생산을 뒷받침하는 핵심 투입 요소로 기능했으며, 이들 품목의 수출 확대가 미국 제조업 성장에 기여한 것이다. 이러한 무역수지 흑자의 정당성과 韓·美 간 상호보완적 구조를 미국 측에 명확히 제시하고 통상 협상의 논리로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對美 투자 확대에 따라 당분간 한국의 중간재, 자본재 수출 증가세도 이어질 전망이지만, 최근 현지 진출한 기업들의 미국 내 현지 조달은 2020년 28.3%에서 2023년 32.1%로 증가하는 추세다.
韓·美 전문가들은 결국 조선, 방산, 에너지, AI·반도체 등 산업 협력이 유망하며 이를 중심으로 한국의 생산 역량과 미국의 첨단 기술력을 결합해 양국이 시너지 효과를 내는 데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한상공회의소와 한미협회가 15일 개최한 ‘한·미 산업협력 컨퍼런스’에서 美 싱크탱크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마틴 초르젬파 선임연구원은 “한국은 ‘AI 확산 규칙(AI Diffusion Rule)’에서 미국産 AI 반도체 수입 제한이 없는 몇 안 되는 국가로, 규제가 있는 중국, 인도 등에 비해 경쟁우위에 있다”라고 말하며, AI 분야를 지목했다. 미국은 AI 확산 규칙으로 국가별로 확보 가능한 AI 프로세서 수를 제한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 정책협력법무실의 마이크 예 아시아 총괄대표는 “한국은 AI 학습의 필수 자원인 고대역폭메모리(HBM) 및 반도체의 주요 공급국”이라는 점을 들며 “양국은 상호보완적인 경쟁력을 갖춘 유력한 AI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김창욱 MD파트너는 “미국이 선도하는 AI 모델을 한국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협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 분야는 일찌감치 관세협상 카드로 지목됐다. 15일 열린 컨퍼런스에서도 전문가들은 미국의 함정 노후화와 보수 및 수리, 건조 능력 부족을 지적했다. 미국의 싱크탱크 헤리티지재단의 로버트 피터스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함정, 항공기, 탄약이 유사시 전력 대응에 충분하지 않고 노후함정의 정비 수요 때문에 조선소 공간이 잠식돼 신규함정 건조까지 지연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한국과 선박 수출, 보수·수리·정비(MRO) 협력은 전시에 미국 본토로 돌아가지 않고 한국에서 빠르게 전투함을 수리할 수 있다는 의미와 평시에는 미국 조선소의 여유공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다만, 연구원은 건조 분야에서도 협력하려면 미국 내 항구를 오가는 화물은 미국産 선박만 운송 가능하도록 규정한 존스법(Jones Act)이 폐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우만 HD현대중공업 상무는 “30년간 364척의 새로운 함정을 건조하겠다는 美 해군의 계획은 현재 건조 역량을 보면 상당히 도전적인 과제”라고 지적했다. 결국 조선 분야의 韓·美 협력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분야는 LNG 對美 수입 확대와 원전 협력 강화가 과제로 제시됐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교수는 “미국은 트럼프 에너지 정책에 따라 천연가스 생산량이 늘었지만 유럽이 對美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고자 LNG 사용량을 줄이면서 미국의 LNG는 과잉 상태다. 결국 미국 입장에서 한국은 중요한 거래대상국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현재 주요국은 미국의 관세 조치에 대해 다양한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관세에 상응하는 수준의 보복 및 무역제재를 시행하며 강경 대응을 하고 있고 EU는 미국의 첫 협상 대상이었지만, 큰 진전은 이루지 못했다. 일본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 DC에서 관세 관련 협상을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 트루스소셜에 본 협상을 시작하기도 전에 “일본 무역 대표단과 만나 큰 영광”이라며 “큰 진전(Big Process)”라는 게시글을 올리는가 하면 17일(현지시간) “멕시코 대통령과 매우 생산적인 통화를 했다”며 각국과 관세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고 자평했다.
|김성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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